logo

성도의 교제

주님만 사랑하는 송현성결교회

 > 성도의 교제 > 자유게시판

자유게시판


수필 … 보고픈 나의 제자들

  • 김인성
  • 조회 : 1751
  • 2019.07.21 오후 11:50

 

  매년 일 년 중 꼬리 달 12월이 되면, 나에겐 허기진 추억이 몸살이 되어 어

김없이 떨림으로 찾아온다. 그러면 한동안 우울증에 헤매듯 어찌할 바를 모르

고 그리움에 푹 빠지곤 하는데, 그것은 바로 이별 아닌 이별을 하게 된 제자들

때문이다.

 

  헤어짐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지만, 미워져서 헤어지는 것도 시간이 지나면 섭

섭한 법이다. 어쩔 수 없이 헤어지는 것처럼 더 슬픈 이별은 없을 것이다.

교실에서 배웠던 제자들도 다 똑같은 제자는 아니지만, 기억에 계속 남는 제자

는 마음에 들었던 제자들이 거의 대부분을 차지하였고, 그 애들은 둘째 치고라

도 인간성이 마음에 안 들었던 제자들도 헤어짐에 있어서는 섭섭하기는 마찬

가지다.

 

  우리나라 대한민국의 1970년대인 40여 년 전까지만 해도 출생률만큼은 현재

보다 훨씬 높아서 어린 아이들이 상당히 많았다. 따라서 15년 정도 세월이 흐

른 후, ‘오뚜기 학원이란 이름으로 개원하고 2년 후인 1987년도에는 우리 학

원의 학생 수도 함께 최대 113명까지 크게 늘어났고, 덕분에 여러 유형의 학

생들을 만날 수 있었다.

 

  그 애들 중에는 아직까지 기억나는 제자들이 대부분이지만, 아무래도 속을 많

이 애태웠던 녀석들이 더욱 많이 기억난다. 그 중 딱 한 명만 꼽자면, 당시 중

학교 1학년에 재학 중이었던 조항종이란 녀석이다. 그의 누나는 중학교 3학년

에 재학 중이었던 선미였는데, 완전히 극과 극이었다.

 

  항종이는 체격이 자그마하고, 공부는 썩 잘 하지 못하는 편이었다. 수학 문제

를 풀다가 , 이 녀석아. 이런 것도 몰라?’ 하고 큰 소리는커녕 작은 소리로

살살 다그치기라도 하면 고개를 푹 숙이고 눈물을 뚝뚝 떨어뜨린다. ‘,

잘했다고 울어!’ 하고 조금 더 큰 소리 치면 녀석은 어찌할 바를 모르고,

대신 엉엉소리 내며 큰 소리로 울어 버린다.

 

  반대로 누나인 선미는 꽤 얌전하고, 공부도 매우 잘 하는 편이었다. 다만 심

장이 약해 가끔 입술이 파랗게 질리곤 한다. 그래서 선미에게는 특별히 큰 소

리 칠 일도 없었다. 어쩌다 한 번은 학원생들을 모아 놓고 과자 파티를 열어준

적이 있었다. 도중에 얌전하게 앉아있는 선미에게 노래를 시켰는데, 갑자기 입

술이 파래지는 현상이 일어나 몹시 당황한 적이 있었다. 그래서 선미에겐 될

수 있으면 공부만 시켰고, 공부할 땐 다른 녀석들에게 치는 큰 소리도 더불어

조심하게 되었다.

 

  항종이도 그 후에는 가르치다가 될 수 있으면 다른 애들과 절대로 비교해서

얘기는 한 적이 없었고, ‘그런 것도 몰라?’ 하는 투의 말은 절대로 안 했다.

그런데 어쩌다 또 울음을 터뜨리고 집에 달려가면 그 어머니가 당장 달려와선

항종이의 성격이 워낙 그러니 선생님께서 이해하고, 좀 많이 봐 달라고 말해

서 가슴이 덜컹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그 녀석이 정말 미울 정도로 성격이 못된 점도 있었다. 그 깐깐한 성

격으로 다른 아이를 괴롭히는 경우가 허다했다. 보통 자신보다 훨씬 작은 어린

애를 놀리는데, 어느 날 한 번은 자기보다 체격이 더 큰 학생을 놀리려던 적이

있었다. 그런데 그 애한테 분수 넘치게 놀리다가 된통 혼이 났다. 항종이는 즉

시 어머니한테 달려갔더니, 어머니가 당장 뛰어와 원장인 내가 교실에서 떡 버

티고 앉아 있음에도 불구하고, 큰 학생에게 손가락질을 하며 욕을 막 해대는

것이었다. 나도 어떻게 손을 대지 못할 정도로 눈 깜짝할 사이였기 때문에 그

큰애는 그만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다행히 혼이 난 큰애가 학원 내에서 울

고 끝났기 때문에 내가 달래주는 것으로 일단락을 맺은 적이 있었다.

 

  그런 일이 한 번 있고 난 후로 나는 불같은 성격의 항종이 어머니를 다시 보

는 계기가 되었고, 그 항종이란 녀석은 웃지 못 할 나의 영원한 연구대상으로

남게 되었다.

 

  그 해 여름이 되어 서해 덕적도에 있는 서포리 해수욕장으로 여선생인 아내

와 중학생을 중심으로 원생 15명 정도만 데리고 캠핑을 다녀왔다. 그 중에 항

종이는 이미 간다고 신청했고, 선미는 건강상 가기 힘들다고 했지만, 중학교를

졸업하게 되면 앞으로 그럴 기회는 없을 것이라고 설득해 함께 다녀왔다.

 

  첫날은 무사히 배를 타고 도착해서 카레라이스로 저녁을 맛있게 해 먹었다.

저녁 바다가 고운 물감을 풀어놓은 듯, 아름다운 붉은 석양이 만들어 낸 황금

빛깔로 온 천지가 물들 무렵, 방갈로 같은 커다란 원두막 한 채를 빌렸다.

들은 각자 가져간 텐트를 원두막 주위에 설치하고 난 다음, 원두막에서 좀 놀

다가 텐트로 돌아가 잠을 자러 갔는데, 한밤중에 갑자기 비바람 치며 태풍이

몰려오는 것이 아닌가? 할 수 없이 모두 원두막으로 올라 와서 비를 피해 하

룻밤을 함께 보냈다. 물론 자리가 좁아서 하룻밤을 꼬박 앉아 밤을 지새운 것

은 두 말할 나위도 없었다.

 

  다음 날 아침, 하늘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맑았고, 눈 시리게 구름 한 점 없

는 파란색을 자랑했다. 그러나 지난 간밤에 할퀴고 지나간 비바람에 애들 텐트

는 모두 엉망진창으로 돼 버렸다. 각자 원두막에서 비바람 때문에 무참히 짓밟

힌 텐트의 모습을 허허롭게 쳐다보고만 있었다.

 

  애들은 그 모습에 질려 두 손 들고 말았는데, 항종이란 녀석은 물을 떠다가

자기 텐트를 깨끗이 닦고, 자리를 다시 평평하게 고른 다음 텐트를 튼튼하게

세우는 것이었다. 그 모습을 보고 순간 어쭈, 공부는 잘 못 하는 녀석이 제법

인걸!’ 하고 나는 감탄해마지 않을 수 없었다.

 

  이 뿐만이 아니었다. 반찬으로 쓸 감자를 합심해서 깎으라고 애들에게 맡겼는

, 대부분의 아이들이 서로 장난만 치고 놀았다. 그러나 항종이 만은 기분 좋

은 듯 연신 싱글거리며 묵묵히 감자껍질을 벗기고 있었다. 책임감 있게 일을

했던 그 녀석을 정말 흐뭇한 눈으로 두 번 다시 보게 되었다.

 

  항종이 아버지는 D전기회사에 다녔다. 체격은 왜소했지만 꽤 인품이 있어 보

였고, 말도 차분하게 하는데 아무래도 선미가 아버지를 많이 닮고, 항종이는

어머니를 많이 닮은 것 같았다. 선미는 성격도 서두르진 않는 편이고, 매우 차

분했고, 항종이는 공부 빼고 책임감이 많은 것 같았다.

 

  그해 12월이 되어 선미는 졸업을 두 달 앞두고 고등학교 공통수학을 준비하

며 함께 공부했다. 그런데 항종이 아버지가 직장을 멀리 옮기는 바람에 선미

졸업식을 보지도 못함은 물론이고, 또 항종이의 성적도 많이 올리지 못하고,

할 수 없이 집을 이사를 해야만 했다. 안타까웠지만 우리 학원을 도중에 그만

다니게 된 것이다.

 

  성격이 불같았던 항종이 어머니와 차분한 아버지, 여성미가 넘쳤던 얌전한 선

미와 공부는 좀 못했지만 책임감이 강한 항종이가 그해 12, 어느 날 갑

자기 아쉬움을 많이 남긴 채 멀리 이사를 간 것이었다.

 

  요즘 원생들에게 공부를 가르치다가 너무 못하면 그 예전의 항종이와 꼭 비

교를 하게 된다. 그 후에도 공부를 워낙 못하는 녀석이 계속 있었지만, 항종이

와 비교를 하며 그 항종이를 한 번 덤으로 떠올리고, 추억 속에 잠시 빠지며

흐뭇한 미소를 한 번 지었다가 다시 되돌아오곤 한다.

 

  그래서 아직도 12월이 되면 항종이와 선미 그 가족 뿐 아니라, 고등학교를

앞두고 떠났던 다른 중학교 3학년 원생들이 나의 흐뭇하고 잊을 수 없는 한

편의 추억이 돼, 맛있게 되살아나곤 한다.

 

  이렇게 밉던 곱던 나에게 공부를 익혔던 많은 제자들인데, 세월이 쓸쓸히 지

나가고 시간이 더 가면 갈수록 무척 생각이 난다. 다행히 같은 교회에 다니는

제자들이 많이 있어 위안이 좀 되긴 한다. 지금도 가끔은 결혼해서 자식을 둔

제자들의 소식을 가끔 듣는데, 어디서 무엇이 되어 살건 모두가 이 원장선생인

나를 잊지 말고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길 바랄 뿐이다.

 

  ‘얘들아, 2019년도를 맞이해 아버지하나님의 모든 은혜로  

부디 건강하고, 행복하게 잘 살기 바란다!’  

 




 김인성

2019-07-21 23:51


이 글을 허락하신 아버지하나님께
감사와 찬송과 영광을 돌립니다.
작년 연말에 쓴 추억의 글인데,
글에 나오는 선미와 다른 애들도
거의 교회에 다니지는 않았지만,
현재 이석란 권사님댁 아드님 한희와
고려대 졸업하고 큰 일하는 충휘와
함께 공부했던 같은 동기생들입니다.
그 당시 매년 한양민박이 있는 을왕리와
초창기에는 영종도 무지개 해수욕장에 자주 갔습니다.
지금은 흔적조차 안 보이게 없어졌는데,
영종도에는 초등학생들과 중학생들을 연합해
덕적도에 있는 서포리 해수욕장도 많이 갔었더랍니다.
여름이 되면 또 하나의 푸른 추억이
고개를 내밀며 팔장을 낀 채 저를 주시합니다.
올해부터 접은 학원이 많이 아쉬운데,
하나님의 원리가 이런 것을 받아들여야겠지요.
세월이 정말 빠른데,
요한복음 여행을 재미있고 보람차게 보내야겠습니다.*^..^*

 김인성

2019-07-21 23:51


여행을 인도하시는 조광성 담임목사님을 비롯해
모든 교역자님들과 모든 사모님들,
모든 장로님들을 비롯한 모든 성도들과 어린 자녀들,
썸머 어드벤처에 동참할 모든 관계자들과 어린 자녀들,
특별히 채재봉 목사님과 방송부원들에게
항상 아버지하나님의 축복이 가득하길 바랍니다.*^..^*

 김인성

2019-07-21 23:52


우리 교회에는 일부지만 많은 제자들이 있습니다.
40대 중반부터 초등학생들까지 있는데,
모두들 이 원장님을 잊지 말며 끝까지 잘들 살기 바란다.
물론 하나님의 모든 도움을 영원히 받으며… .*^..^*

  • 번호
  • 제목
  • 등록일
  • 작성자
  • 조회
  • 1
  •  수필 … 보고픈 나의 제자들
  • 2019-07-21
  • 김인성
  • 1752

게시글 확인

비밀번호를 입력해 주십시오.

게시글 삭제

비밀번호를 입력해 주십시오.

게시글 수정

비밀번호를 입력해 주십시오.